검찰이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시 최장 징역 30년까지 구형하겠다는 양형기준을 세운 것으로 확인됐다. 고용노동부와 경찰이 중대재해가 발생한 기업들에 대해 잇따라 구속영장 청구 등 칼날을 세우고 있는 가운데, 검찰이 산업안전보건법보다도 더 강한 형량을 적용하겠다는 방침을 확정한 것이다. 수사기관들이 고강도 수사와 강력한 처벌을 예고하면서 ‘중대재해 공포’에 짓눌린 기업들의 불안감이 더 증폭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22일 한국경제신문이 입수한 대검찰청의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양형기준’에 따르면 검찰은 중대재해로 사망자가 생길 경우 양형 범위를 징역 1년 이상에서 30년 이하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으로 정했다. 양형 기본등급은 징역 2년6개월~4년이다. 여기에 △유사 사고 재발 여부 △사망자·부상자 수 △안전보건 확보의무 위반 정도 △피해 회복 및 구호조치 정도 △피해자나 유족과의 합의 여부 등 가중·감경 요인에 따라 형량이 달라지는 구조로 돼 있다. 산안법상 양형기준(징역 1개월~7년)보다 처벌 수위가 한층 높다. 이 양형기준은 대검 공공수사부와 형사부가 만든 것으로 지난 1월 말 일선 현장에 배포됐다.
대검이 이 같은 기준을 적용해 진행한 시뮬레이션에서 과거 발생한 주요 중대재해 관련 책임자들이 실제보다 더 무거운 형량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38명이 사망하고 12명이 부상당한 경기 이천 물류창고 화재사건 책임자는 징역 3년형을 받았지만 현재 양형기준상으론 징역 10~12년형을 받을 전망이다.
중대재해법 위반으로 처벌받았던 사람이 같은 혐의로 또다시 법정에 서면 처벌 수위는 더 세질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양형기준서에 ‘사망자가 나온 경우 중대재해 재범자에게 최장 징역 45년까지 구형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산안법 양형기준상 재범자가 받을 수 있는 최고 형량(10년6개월·사망자 발생 시)을 훌쩍 뛰어넘는다.
중대재해 현장에선 수사를 맡은 고용부 등이 공격적인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고용부는 올 1월 27일 법 시행 이후 두 달간 중대재해 현장뿐만 아니라 사고 발생 기업의 본사와 협력업체에 대한 압수수색까지 벌이고 있다.
이달 들어선 단체 급성중독 사고가 났던 두성산업의 천성민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이 지난 14일 청구됐다. 수사기관이 중대재해법 위반 혐의로 경영책임자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한 첫 사례다. 진상조사를 맡은 부산지방고용노동청 측은 “사고의 중대성을 고려해 내린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산업계에선 “대표 구속까지 추진하는 것은 과도하다”는 불만이 쏟아졌다. 두성산업은 지난달 창원공장에서 제품 생산과정에 쓰이는 세척제 성분인 트리클로로메탄에 직원 16명이 급성중독됐다.
다만 창원지방법원이 21일 영장을 기각하면서 최고경영자(CEO)가 구속되는 일까진 벌어지지 않았다. 창원지법 측은 고용부 주장과 달리 증거 인멸이나 도주 가능성이 없는 등 구속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고용부는 추가 영장 청구 없이 천 대표 등 두성산업에 대한 수사를 이어갈 방침이다.
이 같은 수사기관들의 움직임에 기업들의 압박감은 점점 커지고 있다는 평가다. 고용부 등에 따르면 중대재해법 시행 후 지금까지 20건 넘는 중대재해가 발생해 30명 가까이 사망한 것으로 파악된다. 한 대형로펌 변호사는 “일반적인 살인죄도 대법원 양형기준에서 최장 징역 20년 정도인데 최장 징역 30년, 재범 시 45년이 구형되는 양형기준은 형법 중에서도 매우 강한 수위”라며 “사고 한 번으로 법정에서 유죄 판결을 받으면 최고경영자 자리가 위태로운 상황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진성/곽용희 기자 jskim1028@hankyung.com